CALL OF CTHULHU 7TH EDITION
카데르는 DOT의 14회의실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살면서 무수히 많이 들어 보았을 이름의 주인.
도밍게즈의 구원자, 모든 사람이 사랑하고, 시간이 선택한...... 타이머,
이름을 곱씹는 것만으로 미묘하게 기분이 이상합니다.
사실 얼마 전부터 카데르의 삶에는 이상한 일만이 가득했습니다.
(훗⋯)
(비상한―자칭이다.― 머리로 최근에 있었던 일 차근히 되짚는다.)
봄처럼 소리소문없이 드러난 시간의 각인을 발견했을 때부터요.
아무 일 없이 지나갔던 12살의 생일과 달리,
혹은 이름 모를 무언가가 당신을 붙잡는 것처럼 각인을 따라 희미한 열감이 두드러졌습니다.
어느 날, 어떠한 것도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 공간이 카데르를 집어 삼켰습니다.
어둠만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인간이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 리 없죠.
게다가 카데르는 아직 어린 14살이였으니 더더욱 그렇습니다.
정신을 차린 뒤 카데르가 거울을 바라보았을 때,
그곳에는 유일한 구원자, 타이머만이 가질 수 있는 시간의 각인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눈을 몇 번이고 깜빡여도 사라지지 않았죠.
카데르는 이 일을 무척 이상하게 여겨서(?) DOT에 먼저 연락을 했습니다.
그래요, 평범한 일상이 덜그럭덜그럭, 기묘한 소리를 내며 뒤틀리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날부터였습니다.
카데르:(느리게 눈 끔벅이던 녀석은 제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는 생각 위로 검은 볼펜 두줄 찍찍 긋는다. 아니, 사실 그때부터는 아니었고. 정말로 매일 같이 반복되던 일상이 어긋나기 시작한 것은 그달 개최 예정이었던 모 소설의 사인회가 갑작스럽게 취소된 그날부터였다⋯⋯)
(처음에는 너무 쇼크를 받아서 블랙아웃이 온 줄 알았지.)
카데르가 DOT에 도착했을 때,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자를 보는 양 황망하고, 황당함을 가득 담아 깜빡이던 눈꺼풀과 다물지 못하던 입술 사이로 새던 신음성.......
“세계를 구원할, 새로운 구원자가 깨어났군.”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과 흐릿한 남색 제복을 입은 사무원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하인리히 장교가 감탄을 흘렸습니다.
DOT의 장교, 실질적인 책임자로 종종 TV에도 얼굴을 비추곤 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장교를 비롯한 그 누구도 카데르의 자격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쇄골에 새겨진 두 자리의 숫자란 도밍게즈에서 그토록 절대적이거든요.
카데르는 세계를 구원할 새로운 구원자라는 명분하에 DOT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집보다 나았을 수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수도 있지만 도밍게즈는 세계 멸망의 소문에 시달리고 있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DOT가 당신을 놓아주지 않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실험실에서 처박혀 지낸 소감은 어때요?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정부는 제 맡은 바 소임을 다하였다. 위험 분자를 대상으로 정보를 통제함으로써 발생하는 미약한 의존성은 충성심이 요구되는 군대에서 취하기에 썩 적절한 행동 방침이지. 이를 비롯하여 일정 수준의 요구는 거절하지 않고 수용하여 인간으로서의 호감을 불러일으키고 정서적으로 가까워지고자 하는 시도들은 제법 흥미로웠다.)
(하지만 도서관 정도는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게 해주었음 하는데. 자진 신고한 점을 참작해줄 순 없었던 건가? 융통성 없긴.)
(총평이다. 마음에 안든다.)
도서관에 가지 못하게 하여 기분이 상했습니다.
자기들 할 일은 하지만 융통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곳이 도통 마음에 들지가 않아요.
카데르:(날 떼쟁이 어린애인 것처럼 말하지 말아줬으면 한다만. 머리 툭툭친다.)
아무튼...그들은 당신을 일컬어 이리은, 13시 타이머의 짝이라 불렀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은 흐르고, DOT에서의 생활은 평이했습니다.
카데르의 존재는 리은에게도 비밀에 부쳐졌습니다.
정확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타이머를 혼란케 하지 않으려는 조치라더군요.
설레발을 쳐서 네 파트너가 왔어! 라고 했는데...
카데르는 연구원들이 머무는 동관에서, 사무원의 질문에 대답하거나 연구원의 신체검사 따위에 응하는 것을 제외하면 쭉 홀로였습니다.
혼자서 멀뚱하게 방에 감금되어 있는 생활...
연구원들이 뽑아간 피... 주사기 자국이 욱신거립니다.
긴 밤 내내 카데르가 운명의 짝, 자신의 파트너, 자신과 같은 시간의 타이머인 리은을 떠올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몰라요.
그도 그럴 게, 아주 가까이, 바로 너머에 머물고 있었는걸요.
기나긴 회상을 깨고, 하인리히 장교가 타이머들의 도착을 예고합니다.
기다렸다는 것처럼 타닥타닥, 바닥을 밟는 소리가 경쾌하게 복도를 가르고,
안내데스크에 앉은 직원이 상냥하게 건네는 안내가 문턱 너머로 들립니다.
곧이어 다른 카운터들이 슬그머니 안으로 들어옵니다.
타이머들이 오기 전에 카운터들과 인사라도 해보는 것은 어때요?
고독한 늑대의 길을 걷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카데르:(흐음. 턱 괴고 카운터들 쓱 훑어본다. 어디⋯⋯ 좀 말랑하고 적당히 말 붙이기 쉬울 법한 애 있나?)
어디보자... 말랑하고 적당히 말 붙이기 쉬울 법한 애...
저쪽에 움츠리고 이리저리 살피는 애도 있고... 까칠하게 팔짱을 낀 애도 있고...
불량스럽게 사탕을 물고 있는 애랑... 조용히 앉아서 앞 보는 애랑...
방글방글 웃으면서 꽃을 물고 있는 애도 있고요...
(흡-족해한다.)
(바보도련님.이게다호감을사려는호감작인줄도모르고)
(속으로 툴툴거리며 사탕 물고 있는 아이한테 다가간다.) 어이.
??: ...? 왜. (그러니까... 잠시 당신을 멀뚱 보다가 사탕 고쳐 문다.) 곱상한 샌님이네.
카데르:너 좋은 걸 먹고 있군? 특별히 이 도련님-을 보필할 기회를 주마. (손 내민다. 사탕 달라고.)
??: 미친거야? (미친거야?)(한쪽 눈 찌푸리더니 내밀어진 손 본다. 어색하게 자신의 손 올려둔다.) 보필은 모르겠고 뭐 어쩌라고.
(스을쩍 손 뒤로 뺐다가 다시 내민다.) 방금 말을 사탕을 달라는 뜻이 아니면 무어라 이해할 수 있다는 거지?
??: 이거 완전 날강도 잖아. 싫어, 임마. 악수는 받아준다. (그런 소리나 하며 주머니에서 초콜릿 꺼내서 올렸다. 사탕은 없다고 했지 초콜릿이 없다고는 안 했으니까.) 너 애들한테 삥 뜯고 댕기지 마라. 어린 애가 발랑 까져서는.
카데르:그러는 너도 나이대는 나와 비슷해 보이는데, 애늙은이처럼 구는군? (냉큼 초콜릿 까서 먹는다. 냠.) 무례는 초콜릿을 봐서 한번 넘어가주마.
??: 헹. 안전하게 산 샌님이랑은 다르게 컸어서. 여기는 먹을 거 많이 줘서 좋더라. 넌 간식 안 받았어? 달라고 하면 주던디. (사탕 돌돌 굴리다가) 무례고 나발이고 이름이나 알려줘. 예의 차릴 시간에 통성명이나 하자.
카데르:샌님이 아니라 도련님. (꿋꿋하게 정정해준다.) 제일 원했던 걸 거절 당한 뒤로 다른 건 요구할 필요성을 못 느껴서 그다지. 군것질을 즐기는 편도 아닌지라. (만나자마자 사탕 내놓으라고 한 사람이 말해봤자 설득력 없다.) 카데르 아이셀이다. 카데르 도련님이라고 불러. 너는?
베니: 그래, 샌님아. (꿋꿋하게 멋대로 부른다.) 제일 원했던게 뭐길래 그런대냐. 대부분 구해다 줬잖아. 달다구리를 안 찾는 놈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잖아. 내가 있던 곳에서는 없어서 못 먹었는데. (단 거 좋아하는구만. 납득을 하고 고개 기울여 당신 올려다 본다.) 벤. 어떤 개자식 덕분에 이름이 베니인지 뭔지로 등록 된 것 같은데 벤이야. 벤. 알아먹지? 그러니까... 카... 카... 카밀라. (틀렸다.)
카데르:도련님이래도. 혹시 도련님 뜻을 모르나? (급기야.) 도서관에 가보고 싶다고 했지. 직접 가는 건 안되지만 원하는 책이 있다면 가져다 주겠다기에 영 아니다 싶었다. ⋯어느 구역 출신인가? 다친 곳도 많은 것 같은데, DOT에 오래 있었나⋯ (말끝 흐린다.) 카데르. 어려우면 이름 빼고 도련님이라고 불러라. 계속 틀리면 나도 베니라고 부를거다.
베니: 알지. 높으신 자제분이잖아? 형들이 샌님이라 부르길래 입에 붙었어. (도서관... 도서관...) 도서관이면 책 가득한 따분한 곳이잖아! 너 그딴 곳 좋아해? 캬... 취향 하고는...~. 나... 어디더라. 8구역 뒷골목 출신이야. 거기는 높으신 분들이 싫어해서 이래저래 모여살지. (사탕으로 당신 가르킨다. 너 같은 애들. 이라며.) 그래, 샌도련님아. 이걸로 협상 끝~.
카데르:허. 그래⋯ 일단은 그 정도로 넘어가주마. 유예는 딱 반년이야. 그 안으로는 앞에 그 거슬리는 거 없애놔라. (으름장을 놓는다. 눈 가늘게 뜨고서는 당신이 한 말 되짚어 중얼거리다가.) 치안 안 좋기로 유명한 관광 지역을 말하는 것이로군. 형들이라 함은 가족들이 있는 건가? 이곳에 같이 왔을 것 같진 않은데.
베니: 에...~. 뭘 없애? 샌도련님이 마음에 안 들으면 칼 해. 난 글자 하나인 이름이 좋더라. 외우기 편하잖냐, 캄베른. (틀렸다.) 사람들이 왕왕 놀러오긴 하더라. 새끼들... 뭐가 좋다고 그리 낄낄 웃어대는지 모르겠지만... 주머니에 든 것들은 쏠쏠했지. (검지와 엄지 둥글게 말아 흔든다.) 나 혼자 카운터인지 뭔지로 끌려왔어. 연락도 못 해, 이제. 처음에는 내 소매치기 들켜서 잡혀가는 줄.
카데르:도련님은 쉽게 애칭을 허용해 주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캄⋯ 그건 또 어디서 나온 거지? 조금이라도 기억하려는 노력은 해라. (황당⋯) ⋯⋯소매치기라고. (틈) 네가 그걸로 생계를 유지했으면 형제들도 비슷했겠군. 형제들 이름은 기억하나?
베니: 너 진짜 깐깐하게 군다. 융통성 없는 놈 같으니. 일단 비슷하긴 하잖아. 알아들으면 그만이지. (전혀 아니다.) 위에 형들은 자기들끼리 약 팔았고 난 그거 손 안 댔다. 밑으로 동생 일곱. 형들 이름은 숫자였고 동생들 이름도 비슷했어. 그럼 너는? 가족이이 뭐 하는데? 잘 사는 도련님 같잖냐. 그... 뭐시기냐... 부티? 귀티? 암튼 나는 것 같고.
형식적인 노크와 함께 14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들이 들어섰습니다.
연구원들이 매일같이 사진을 보여주며 얼굴을 익혀두라고 당부하지 않았던가요.
그러나 카데르가 그를 알아본 것은 눈에 익은 얼굴이라는, 그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카데르가 눈을 깜빡이자 리은 또한 같은 속도로 눈을 깜빡입니다.
12살 이후로부터 단 한 번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본 얼굴이었으니까.
TV도, 신문도, 휴대폰 속 무수히 많은 게시글마저 그를 주목했는걸요.
정반대에 서 있는 사람에게서 도저히 시선을 뗄 수 없습니다.
누군가 그러라고 명령한 것도 아닌데, 밑바닥부터 가장 높은 곳에 이르기까지
모든 감각과 기분, 생각과 언어, 감정과 본능이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가까이 가고 싶다는, 어울리지 않는 욕구가 고개를 쳐듭니다.
타이머에게 홀린 듯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분명 저 쇄골 부근에는 타이머의 각인이 있겠죠.
카데르의 각인과 꼭 같은 곳에 있는, 똑같은 두 자리의 숫자.
그가 카데르의 운명이자 단 하나뿐인 파트너라는 증명.
하인리히 장교: 인사하게. 자네의 짝이 될 사람일세.
하인리히 장교는 익숙하게 타이머들에게 카운터들을, 카운터들에게 타이머들을 소개합니다.
미리 설명을 들었던 카데르와 달리, 리은은 처음 듣는다는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놀란 기미를 숨기지 못합니다.
군인이란 되묻지 않는 법이지만, 리은은 기어코 되묻고 말았습니다.
하인리히 장교: 다시 말해줘야겠나? 인사하게. 자네의 짝이 될 사람일세.
리은:(미묘한 눈으로 당신 물끄러미 바라본다.)
뻐꾸기처럼 반복되는 대사가, 친절하게도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다시금 짚어줄 뿐이었지만.
하인리히 장교는 타이머의 당황한 얼굴을 한껏 즐기고 난 후에야 제대로 된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카데르라면 각인이 드러난 후, DOT로부터 익히 들어왔던 설명입니다.
하인리히 장교: 세계 멸망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들었으리라고 생각하네.
물론,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일어나서도 안 될 일이지. 하지만 예 언의 탑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야. 이미 세간에서는 반쯤 기정사실로 받아들 이고 있어. 무슨 뜻인지 알겠나? 이건...... 아주 좋지 못한 조짐일세.
멸망이 실재한다고 해도 문제지만, 실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더 문제거든.
멸망이 예정된 세계의 법과 도덕, 규칙 따위를 누가 지키겠냔 말이야. 그렇지 않은가? 세계는 무너질 테고, 점차 아수라장이 될 테지. 처리하기 곤란한 쓰레기가 넘쳐날 거야.
그래서 우리는 이전부터 세계 멸망에 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네. 어떻게 하면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하고 말이야.
자신의 수염을 가다듬은 하인리히 장교가 드디어 본론을 꺼내 들곤,
세계는 멸망하지 않아. 도밍게즈는 새 계절을 맞을 거야.
그리고...... 눈앞의 이가 그 증거일세.
하인리히 장교: 지난 예언의 타이머는 매우 훌륭한 이였어. 눈과 귀가 밝고 입이 무거운데다...... 미래를 바꾸는 방법을 함께 점지받곤 했거든. 많은 이들이 세계 멸망의 예언이 예언의 탑으로부터 시작한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
DOT는, 타이머는 이미 그 미래를 알고 있었네. 그 예언이 퍼질 것도, 세계가 혼란스러워질 것도, 그리고...... 새로운 구원자가 나타날 것마저도!
반년 전쯤부터, 예언을 따라 새로운 능력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네. 바로 이들이지. 정확히 열네 명, 자네들과 같은 각인이 새겨져 있어.
우리는 이들을...... ‘카운터’라고 부르기로 했네.
하인리히 장교: 세계 멸망의 초읽기를 앞둔 작금의 상황에,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이 아닌가?
세계를 구원하는 역할에 도취한 것인지, 예언의 탑을 한 방 먹일 즐거움에 심취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인리히 장교는 하나씩, 카운터의 시간과 이름을 소개했습니다.
제0시의 ■■, 제1시의 ■, 제2시의 ■■■과 제3시의 ■, 제4시의 ■■과 제5시의 ■■■, 제6시의 ■■■■, 제7시의 ■■, 제8시의 ■■■■■, 제9시의 ■■■, 제10시의 ■■■와 제11시의 ■■, 제12시의 ■■■와 제13시의 카데르.......
모두 열넷이었지만, 리은은 오직 카데르의 이름에 사로잡혔습니다.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듯 카데르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걸요.
하인리히 장교: 연구 결과, 카운터가 타이머와 똑같은 능력, 자질이 있으며 시간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이 입증됐어. 그뿐만 아니라 타이머의 능력에 개입하거나 간섭할 수 있을 거란 가설이 등장했지. 물론, 긍정적인 방향으로 말이야.
오늘부터 서관에서 함께 지내게 될 거야. 수업부터 시작해서 모든 타이머의 활동과 역할을 부여받아, 자네들과 동행할 걸세.
그러니 인사들 나누고, 사이좋게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해보라고.
어떤 재난이 닥쳐와도, 어떤 재해 가 밀려와도 타이머와 카운터가 함께라면 세계 멸망을 막을 수 있노라고.
개인의 의견은 묵살하기 딱 좋은 명분이었습니다.
하인리히 장교: 전달 사항은 이걸로 끝이라네. 서관으로 데려가서, 건물 소개도 좀 해주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친해지도록 해. 다음 달쯤, 건국 축제에서 정식으로 카운터의 존재를 발표할 예정이니 외부에 유출하지 말고.
마지막까지 일방적으로 명령한 장교가 절도있게, 그러나 한없이 가벼운 걸음으로 회의실을 나섭니다.
회의실에는 침묵과 함께 타이머와 카운터, 두 개의 시간이 남았을 뿐이고요.
14명의 타이머 중 누구도, 시간이 데려온 운명의 상대에게 표정 관리를 하는 법은 훈련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타이머와 카운터가 각기 짝을 지어 흩어지고, 카데르의 앞에는 여전히 리은이 서 있습니다.
리은:장교님이 갱년기가 오신 건지 노망이 나신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이름이 뭐요?
카데르:장교님더러 그리 말해도 되는 건가? 뭐⋯ 특별히 보고드릴 생각은 없지만.
(내내 여유로운 웃음 걸친 채다. 뒷목을 쓸어내리던 손 당신에게 내민다. 이전 아이에게 하던 것과는 다른 몸짓, 악수를 청하기 위해.) 카데르 아이셀이다. 앞으로 잘 부탁하지. 파트너.
리은:안될 것은 뭐요? 14살 먹은 남녀한테 한 방에서 지내라고 하는 이에게 남았던 존경심도 다 사라졌소. 뭐어~ 제일 윗사람이니 따라야 하는 것은 당연하겠다마는. (물끄러미 손을 바라본다. 한창을 그렇게 있다가 느리게 잡고 고개를 들어 마주한다.)
이리은이외다. 이쪽이야말로 잘 부탁하는 바 있네. 파트너를 성으로 부르기는 너무 정 없어 보이니 카데르라 함세. (손 한 번 흔들었다.)
카데르:(남녀 한 방에 있는 것이 남은 존경심마저 사라질 상황인가? 속으로 생각했지만 씹어 삼킨다.) 역시 오래 알고 지낸만큼 상관과도 막역한 사이인가 봐. 앞으로 파트너한테 의지할 일이 많겠는데. 이쪽은 아직 영⋯ 아까 봤지? 이 도련님을 아주 막 다루시는 거. (나름의 농인가, 제법 장난스럽다.)
그래라. 편한대로 불러, 편한대로. 파트너한테 도련님이라 부르라 하기에도 좀 그렇고. (다른 온도 가진 두 쌍의 녹색 눈 마주한다. 마주 손 흔들고선.) 나도 이름으로 부르고 싶은데. 이가 이름이고 리은이 성인가? 아님 이리은― 자체가 하나의 이름? 식견이 짧아 무례를 저지르는 걸 용서해줬으면 좋겠군.
리은:당연히~ 장교님은 아은이를 제일 좋아하시지! 암! (뿌듯한지 처음으로 빵긋 웃음을 낸다. 입꼬리가 광대에 닿을 지경이다. 금방 돌아왔지만.) 장교님은 기본적으로 순종적인 이들을 좋아하시는 것 같으니 맞추면 기본은 할 거요. 같이 있으면 임자도 잘 대해주시지 않겠는가-. 내 잘 말해둠세. (이런 소리나 하며 저 또한 농 냈다.)
도련님은 어디서 나온 호칭이외까? 흠흠... 귀하게 자라온 티는 있으니 내 막 대하는 일은 없을 거요. 기본적으로 사람을 대할 때 예를 갖추긴 하다마는... 역시 생소하구료. 다-들 그런 소리 하더라니. (흠흠...) 이 가 성이고 리은이 이름이외다. 임자와 비슷하게 이름을 두자면 리은 이 가 되겠소.
카데르:⋯그것 참⋯ 그야말로 군인이시로군. 상관의 말에 절대 복종하는 건 영 성미에 맞지 않는데, 돌발 행동을 하려는 조짐 보이거든 알아서 막아줘라. 주먹이든 능력이든 뭐든간에. (처음 눈에 담은 웃음에 짧게 침묵한다. 느리게 눈 슴벅였다. ⋯⋯.)
아은이라는 건, 애칭 같은 건가?
도련님이라는 건 대략⋯ 가진게 많은 만큼 책임질 것도 많은 자리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귀하게 자란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만, 꼭 귀하기만 한 것도 아니라서. ⋯아니, 생각해보면 이제는 도련님보단 구원자라 불릴 날이 더 많겠군. (썩 내키지 않는 낯이다.) 그럼⋯ 리은으로 부르는게 낫나. 흐음⋯.
(제 손 안에 들어와 있던 당신 손 슬며시 쥐고서, 허리 살짝 숙여 고개 가까이 한다.) 이름을 허락해 주시겠어요? 레이디.
리은:물론 장교님이 허튼소리 하시면 나도 가만히 따를 생각은 없네. 같이 튀어나가는 일만 없으면 되지 않겠는가? 다행스럽게도 내 정의로운 짓을 하겠다며 몸 불사르는 이는 아니니 어느 정도는 막아줌세. 폭력은 싫으니까 잡으면 알아서 정신 차리시게나. (어깨나 으쓱이다가 멈칫. 어... 말을 약간 늘린다.) 응. 귀엽지 않은고? 어른들이 귀엽게 어린애를 부를 때 쓰는 거야. 아은아~ 하고.
헤... (당신의 말을 가만 듣는다. 주변 스윽 보다가 다른 이들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입 꼭 다물었다. 밖에서 막 할 질문은 아닌 것 같고...) 억지로 떠밀린 구원자가 싫어? (끔박.) 글쎄- 사람은 날 때부터 귀하다 하였으니 모든 생이 귀하겠소. 높은 자는 그만큼 책임이 무겁기에 높은 자인 게지. 납득이 되지 않는 바는 아니니 고개 끄덕임세.
(이대로 손 잡고 밖에 나갈까 싶다가 처음 겪어보는 일에 멍청한 표정이나 한다. 뭐시여, 이게? 실로 당황한 낯으로 입만 벙긋거린다. 곧이어,) 얼마든지. 편하게 부르시게나, 신사분.
14회의실에 계속 있어봐야 소용 없을 겁니다.
다른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리자 리은이 카데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끌어내는군요.
소란스러움 속에 있는 것보다는 숙소나 뭐... 아무 곳이나 가는 것이 좋겠죠.
14회의실을 빠져나오면, DOT 본관의 복도입니다.
흰 대리석이 깔린 바닥과 열두 개의 별자리가 그려진 남색 천장,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붓의 흐름조차 눈치채지 못할 만큼 섬세하게 회칠을 한 벽.
DOT의 본관은 언제나 그렇듯 흠 없고, 점 없이 완벽하기만 했습니다.
당연하게도, 리은에게는 낯익은 풍경이었고, 카데르, 당신에게는......
낯익기 짝이 없어서, 꼭 제자리를 찾아 온 듯했습니다.
처음 발을 들였다곤 믿을 수 없을 만큼...... 공기마저 친숙했어요.
리은:자아~ 어디를 갈까~. 숙소나 훈련실이나 도서관도 있네. 옥상도 있긴 한데... 거긴 잠겨있어. 가보고 싶은 곳 있소?
카데르:(여즉 잡고 있는 손 힐끔 보았다가 잠시 말 없이 주변 둘러본다. 어딘가 불쾌감까지 느껴지는 친숙하기 짝이 없는 공간을.) ⋯평소 같았으면 바로 도서관이라고 대답했을 텐데, 오늘은 숙소가 보고 싶군. 너희가 숙식을 해결하는 곳이 궁금해졌어.
리은:(잡고 있는 손 흔들거리다가 약하게 끌며 종종 걸음 옮겼다.) 책 좋아하는구먼. 나도 그래. 내 방에 구하기 어려운 것들 제법 많소. 취향이 맞으면 참 좋겠네. 숙소라고 해봤자 원룸 형태라서... 넓은 것도 좁은 것도 아니외다.
카데르:그럴까⋯. 네 방에 있는 책들도 조금 궁금하고.
특별히 좋아하는 종류의 책이 있나?
리은:(엘리베이터의 버튼을 꾹 누른다.) 좋아하는 종류라고 하면... 철학책도 좋아하고 동화도 좋아하고... 인문학은 대부분 읽는 듯 하오. 로맨스는 취급 안 하니 미리 말을 해두겠네.
카데르:오, 나랑 비슷한 걸. 나도 인문학이면 가리지 않고 읽거든. 로맨스는⋯ 그런 걸 주로 다루는 문학이 유구한 사랑을 받아온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고. 굳이 따지자면 싫어하는 건 또 아니다만. (슬쩍 당신 쪽으로 고개 기울인다.) 이쪽 도서관은 어때? 신간도 많이 들어오나?
리은:진짜?! (눈에 반짝, 빛이 들어와서는 당신 올려다 본다. 잡은 손에 힘이 약간 들어갔나.) 우리 문학 취향이 잘 맞는 듯 하오. 이거 아주 좋은 친우를 얻었군, 그래! 로맨스를 아예 싫어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해하기 조금 어려워서 내 그러하거든.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음~ 도서관이라...) 신청하면 들어오긴 하지만 이용하는 이들이 대부분 연구원들인 탓에 원하는 것은 못 얻을 듯 싶소. 인터넷도 안 되는 탓에 매번 부모님께 부탁하는 중이지.
카데르:어⋯ 응. (움직임 미묘하게 굳는다.) 취향 받는 사람이 어지간히도 없었나 보군⋯? 하기야, 도서관을 찾는 이들이 대부분 연구원이라면 그럴만도 한가. 편견이겠다만 그런 류의 사람들은 문학 쪽에는 영 흥미가 없다는 이미지가 강하니. (당신 따라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서는 삑, 4층 버튼 누른다.) 인터넷이 안 되는 건 좋다고 해야할지 나쁘다고 해야할지. 너희⋯ ⋯아니, 우리에 대한 여론을 신경쓸 필요가 없는 건 좋긴 하겠군. 부대에서 알아서 해결해줄 것 아닌가. (구원자― 타이머가 사람들의 입에 구설수로 오르내리던 글의 내용 가볍게 상기한다. 대부분 긍정적인 내용이었으나⋯.) 부모님과는 편지를 나눌 수도 있나? 실험실에 있는 동안에는 금지하던데.
리은:(꿈빡. 빠르게 눈 깜빡이며 올려다 보다가 히이- 다시 웃기나 했다. 기분이 좋은 모양이지.) 타이머 중에 이런 이야기 섞어주는 애가 있긴 한데...~ 미묘하게 취향이 안 맞는단 말이오. 그 아이 너무 뭐랄까... (뜸,) 너무 번듯하다고 해야 하나. 세간이 말하는 구원자 자체 같아서 대화하기 어려워. (당신의 팔에 제 머리 툭 기댔다가 바뀌는 숫자 읽었다. 1층, 2층...) 대신 TV는 나와서 뉴스 확인은 된다? 밖이랑 연락은 못하는 대신에 마지막 오락,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 매일 좋은 이야기들이나 떠들어서 내 볼 생각은 들지 않는다만.
(도착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당신 힐끔 살폈다.) ... 부모님이...~ 군쪽이랑 일을 하시는게 있어서 조금씩? 물론 원래 안되는 것이 맞소. 그러니까 임자도 쉿, 비밀이야! 책을 받아야 한단 말이외다!
카데르:흐응⋯ 구원자 그 자체라. 그것 참 정의감 넘치는 녀석인가 보아. TV에서 본 타이머 중에 그렇게 보이는 녀석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간극) 내가 듣기로는 리은, 너도 제법 그 구원자라는 역할에 충실한 사람이라 하였는데. (아까 전의 질문을 상기한다. 억지로 떠밀린 구원자라고 말했었지. 그건 본인이 이 자리를 그리 여기고 있는 탓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언론에서 너희들의 진짜 성격 같은 것들을 알려줄 리도 없나. 너랑 그 녀석은 어떻게 다르지?
(짧은 침묵.) ⋯그래? 그럼 다른 아이들은 원하는 물건이 있어도 자유롭게 보급받지는 못하겠군. 나도 마찬가지일 거고⋯ ⋯상부한테 말할 생각 없으니까 걱정 마. 방금 전에 절대 복종하는 건 성미에 안 맞는다고 했잖아? 이런 좋은 일 즈음이야 얼마든지 묻어줄 수 있지. 그러니까 쉿, 비밀로 해줄게. (장난스레 웃으며 입에 지퍼 잠그는 시늉 한다.) 대신에 나도 가끔 네가 받은 책을 빌려줘. 어때?
리은:살면서 그런 애 처음 봤소. 그놈이 그렇게 된 것은 여기 어른들의 영향이 클 듯 싶소만... (말 주욱 늘리다가 그런가, 잠시 생각에 빠진다. 곧이어 입을 열었다. 별 것 아니라는 것처럼 가볍게 툭 뱉기를,) 어, 그렇지. 구원자의 역할을 받고 자리했으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뿐이외다.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은 내 뜻한 바가 아니었소마는 본의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해야 했을 일이잖소. 맡은 역할이 무엇이든 열심히 해서 칭찬 받으면 기분도 좋지 않겠어? 원해서 능력 가진 것도 아니고 갑자기 끌려왔는데 언제까지나 반항하고 있는 것은 비효율적이외다. 임자도 그렇지 않는고? (다른 점. 상대를 가만히 떠올리다가 표정이 미묘해졌다. 곧이어 팔자 눈썹-일명 좀 불쾌함-의 뜻이 얼굴에 떠올랐나.) 인간을 미련할 정도로 믿는다 와 아니다, 의 차이요. 반항 한 번 해보지 않은 착한 아이와 머리 속에서 약간의 반항을 하는 이의 차이도 있겠소. 물론 둘 다 내가 후자네.
신청을 한다면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 가져다 주겠다만... 그것도 이래저래 신청서도 작성 해야 하고 제법 복잡하오. 원하면 내 특-별히! 도와는 주겠다만! (당신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다. 가슴께 툭 치며 의기양양하게 군다. 암!) 그럼! 편하게 봐도 좋아! 대신 읽은 책 있으면 후기 알려주기야!
역대 타이머의 수에 맞춰 최적화된 형태이며, 본관의 숙소보다 조금 작습니다.
책상, 옷장, 소파, 침대와 욕실이 하나씩 딸려 있습니다.
샤워 시설과 욕조를 갖춘 욕실이고, 작게나마 거실이 분리되어 있지만 주방은 없습니다.
기본적인 생필품은 지급되고 위험하지 않은 개인 물품은 추가로 소지해도 무관합니다
리은과 카데르의 숙소는 복도 끝 쪽에 위치합니다.
카데르:oO((혹시 같은 방을 쓰는 건가...?))
리은이 방의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문을 엽니다.
리은:자, 들어오시게나. 짐은 도착했을 거요.
카데르:으음. (표정 미묘⋯ 한 걸음 내디딘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거다만, 침대는 따로 쓰는거지?
리은:(푸하항!) 내가 뭐랬는가? 장교님 노망 난 것 같다고 했잖나! 내 방 침대는 하나일세. (죽은 눈 된다.)
장교님 정말 검사받으셔야 할 것 같은데. ⋯⋯소파는? 있나?
리은:웅. 소파 있네. 이쪽이야. 부탁이니 신발 벗고 들어오시게나. 다른 것들이 올 때 매번 신고 들어와서 기겁하게 되니까.
리은의 방은 기본적인 가구와 한쪽 벽면을 온통 덮는 책장이 눈에 띕니다.
종류를 알 수 없는 꽃향기가 은은하게 퍼져있고 굉장히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카데르의 짐 또한 한쪽에 가지런히 도착해 있습니다.
리은:제대로 둘 곳을 마련 해야겠구료. 자리가 남아야 할 터인데…
카데르:(신발을 왜 벗으라고 하지? 의문 숨기지 않으나 일단 벗는다⋯) 대충 한쪽에 박아놔도 상관 없다. 옷이야 제복이 있으니 됐고⋯ 책 몇권이랑 세면 도구들만 꺼내 놓으면 충분해.
그것보다는 잠자리가 걱정이다. 소파에서 구겨자야 하나. (심각⋯⋯)
리은:거기 신발장 따로 마련을 해두었으니 넣어두시게. (저도 신발 벗고 쫑쫑 돌아다닌다.) 그래도 이제 제대로 지내야 하니까 가구도 조금 더 들이는 것이 좋겠구료. 햐... 할 일이 많구먼. 책은 책장에다가 넣어두면 되네. 마음대로 봐도 좋아. (세면도구는 화장실에다 두라는 말을 끝으로 소파 물끄러미...)
이거 바꿀 생각은 했거든? 피면 침대가 되고 접으면 소파가 되는 것이 있다고 했네. 임자 키가 크지만... 그거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카데르:가구야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책장은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 싶긴 하다만⋯ ⋯흠⋯ 생각해보니 공간 나눌 수 있는 가림막이 있으면 편하긴 하겠군. 옷 갈아입을 때마다 화장실 들락거리면 아침에 힘들겠어. (적당히 생활감 있는 것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주변 찬찬히 둘러본다. 생소한 장식들이 시야에 들어올 때는 남몰래 눈 반짝이기도 했다.)
소파 베드였나⋯ 그런 것 말하는 건가? 참, 이 도련님을 그런 곳에서 자게 하다니. 역시 장교님한테 한마디 해야겠군. (농이다. 안한다.) 바꾸려면 얼마나 걸리지? 일주일만 버티면 될까. (소파 툭툭.)
리은:필요한 것들 정리해서 서류 작성하는 것이 좋겠소. 나 원 참... 생각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모르겠단 말이지. 남녀칠세 부동석이라는 말도 있건마는... (투덜거리며 책상에서 노트 하나와 만년필 하나 꺼내어 필요 목록을 적어 내려갔다. 책장, 공간을 나눌 가림막, 소파 베드, 옷장...) 다른 누군가랑 같이 생활을 해본 적이 없어서 이래저래 어색할 수 있지만 이것도 익숙해지면 괜찮아지겠지, 싶소.
응, 그거! 이름을 몰랐는데 다행이구료. (뭐가 더 필요할까...) 다음 날이면 제대로 된 것을 준비해줄걸? DOT에서 타이머 취급은 각별하니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바로바로 준비를 해주는 편이외다. 하루 이틀만 불편하게 지내도록 합세.
카데르:남녀⋯ 뭐? (모르는 단어에 눈 가늘게 뜨인다.) 그건 또 무슨 말이지. 너는 참 신기한 것들을 많이 아는군. 내가 어디 가서 이렇게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닌데⋯. 너랑 같이 있은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았는데도 처음 보고 듣는 것만 가득이다. 이것도 그렇고. (동양풍 장신구 조심히 건드린다. 혹여 망가질까봐서.) 나도 동일하다. 흔한 형제도 없어서 타인과 생활 공간이 겹친 적이 전무해. 앞으로 잘 합의해서 맞춰가자고. ⋯흠, 이것부터 물어볼까. 리은. 요리는 잘하는 편인가?
(당신이 적은 목록 들여다본다.) ⋯일단은 이거면 돼. 하루 이틀 안으로 준비해준다면 필요할 때마다 요청하지 뭐. 그래도 구원자라고 각별히 여겨주는 게 이럴 면에서는 좋군. 그만큼 굴리겠지만 말이다.
리은:남녀칠세부동석 말이외까? 남녀가 일곱의 나이를 먹은 뒤로 한자리를 같이 하지 않는다는 말이외다. 구별 엄격히 하라는 소리지. 나한테는 일상인데 다들 신기하다고 해서 기분이 묘하구료. 나쁜 의미는 아니고. 앞으로 익숙해져야 할 거야! 대답을 게을리 하는 성격은 아니니까! 그만큼 나도 모르는 것이 제법 있으니 주고 받기로 합세. 그럼 이건 선물이오. 책 읽을 때 꼬옥 필요한 거잖아? (책상 서랍 열더니 안에서 자개로 된 검은 책갈피 내밀었다. 그려진 것은 동백꽃.) 요리... 는 모르겠는데... 내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서...? 식사는 식당에서 하면 되니까 별 생각은 없었어. 필요한가?
성인 된 뒤로는 아아주 굴리겠지! 아, 뭐더라~ 임자가 세간에 공개가 되면 파트너끼리 광고도 찍는다고 했네. 굿즈 같은 것도 제작 된다고 하니까 협조 해야 할걸? 얼굴 팔리는건 당연하니 나가는 것도 어려울 거고.
카데르:칠세부터? 그것 참 엄격한 가르침이군. 동의 못할 건 아니지만. 내게 생소한 것들이 너에게 일상이라면 내 일상 중에서도 너에게 생소한 것들이 있겠지. 너도 모르는 것 있으면 편히 물어. 그다지 좋은 선생이 되어줄 자신은 없다마는⋯ (내밀어진 책갈피 받아들고 앞뒤 돌려가며 확인한다. 이 또한 생소한 무늬다. 이 자는 동백 아닌 코스모스나 장미 따위를 더욱 익숙하게 여겼으니. 잠시간 말 없다가 눈꼬리 휘어 웃는다.) 마침 책갈피가 필요한 참이었다. 고맙게 받지. 보답은 후일로 달아두어도 괜찮나? 당장은 반쯤 빈털털이 신세라. (흐음.) 밤중에 갑자기 먹고 싶은 음식이 있을 때 직접 해먹어야 하니까 그렇다. 집에서는 사람을 쓰면 되었지만 여기선 그게 안 되니까. 밤중에 식당이 운영할 리도 없고. ⋯ ⋯ 아니, 리은은 야식 자체를 안 먹는 편인가. 그렇담 내가 알아서 하마. (만드는 일 있으면 당신한테도 먹일 궁리 한다. 확대시켜 버려야지.)
성인까지라면 아직 시간이 꽤⋯ ⋯켁. 뭐? 굿즈? 광고까지 찍는다고? 빌어먹을, 녀석들이 비웃겠군⋯ (짜증스레 제 머리 헤집는다.) 멸망에 관한 소문 잠재우겠다고 요란스레 홍보할 미래가 벌써부터 눈에 훤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신고할 때 계약서부터 쓰자고 할 걸 그랬네.
리은:이래저래 엄격하게 자랐어서 그랬네. 뭐어... 내 모친이랑 부친은 아아주 부들부들했어서 사랑 담뿍 받고 자랐지마는! (우하항 웃기나 했다.) 좋은 선생이라는 것은 내 어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임자는 잘할 것 같은데. (무언가 신기한가? 자개를 다른 곳에서 사용하지는 않지. 그리 혼자 납득하고 고개나 끄덕인다.) 임자 편할 때 해주어. 그냥 환영의 인사 차 준 거니까 보답은 크게 바라지 않네. 마음에 든다면 다행이구.
...야식도 먹으려고? 임자 보통 몇 시에 자는가? 밤중에 갑자기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기면... 주방이 필요하지 않으려나... 몰래 가서 해먹으면... 혼나겠지...? (나중에 해볼까. 어째 비장한 표정이다. 침 고이기도 하고...) 사실 나 10시면 취침하는 편이라 야식 먹은 적 없어.
임자 제법 웃기는구료. 두고 온 친구들이 임자 굿즈 사서 이래저래 웃겠구료! 뭐어 어때~! 나중되면 자랑스럽게 생각하겠지! 내가 알기로 광고는 하고 싶지 않으면 거절할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은 마시게나. 그만큼 개인 수입은 줄겠지만? (푸하항.) 그-으래도 임자 인형 하나 정도는 방에다가 둘 생각이네. 귀엽겠지?!
카데르:다정한 부모님⋯ (잠시 먼 곳에 시선 두었다. 표정 일순 사라졌으나 금새 본래대로 돌아온다.) 좋은 분들이 보호자로 있는 건 부러운 일이지. 네가 원하는 책을 보내주신다고 했을 때부터 대략 짐작했지만. 주기적으로 만나기도 하나? 그 정도는 허락해줄 법도 한데. (제 부모 관련 이야기는 부러 누락한다. 그다지 만나고 싶어하는 기색도 아니었고.) 오냐, 그 생각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힘내마. 아무렴 이 도련님이
완벽하지 않을 수는 없지. 나도 참. 답지 않게 약한 소리를 했군. 선물에 부담을 가지지는 않으니 걱정 말아라. 그래도 필요하거나 원하는 물건이 있으면 알려줘. 그쪽에 맞출테니까.
내가 보통⋯ ⋯최근에는 2시에서 3시쯤에 취침하지. 신경쓰이는 것들을 알아보고 공부하고⋯ 그러다 보면 늘 시간이 훅 지나가 있더군. 그러면서 가볍게 먹는 거지 뭐. ⋯특별히 혼나기야 하겠어? 정확한 규칙으로 규제되고 있는 사항이 아니라면야⋯. ⋯10시는 확실히 빠른데. 그렇게 자서 몇시에 기상하는데 그래?
광고만 아니라면 됐어. 그런 식으로 카메라 앞에 서는 건 별로야. 개인 수입은 없어도 아버지가 알아서 내 몫만큼 해주실테니 어찌됐든 상관 없고. 굿즈는 내 쪽에서 오히려 환영이지. 이 멋진- 도련님의 용안을 표현하는 건 한계가 있겠지만, 그만큼 후세까지 길이길이 남을 역작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아니겠어. 가능하면 다양하게 많이 만들어줬으면 좋겠군. (흠.) 리은, 네 인형은 이미 만들어졌으려나?
리은:웅. 맞지. 좋은 보호자가 있는 이들은 축복 받은 거야. 미리 약속을 잡고 허락을 받으면 면회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 삼가는 중이오. 결심이 흔들리면 안되잖아? 그렇게 만나면 계속 보고 싶고 어리광 부리고 싶으니까 참아야지. (엣헴. 괜스럽게 어른스러운 척도 해본다. 이 사람, 부모님이랑 사이 별로 안 좋은가. 한가지 더 알았다.) 그러고 보니까 완벽한 도련님이 되려고 하는 것 같던데 임자 목표요? 완벽한 도련님이라는 것이 뭐길래 그래-? 아직 어린 애인데 나약한 소리 좀 하면 어때서. (고개나 갸웃 해보이는 것이다.)
윽, 공부벌레구만! 좋아, 좋아. 불 켜져 있어도 내 이해하겠네. 세상만사 궁금한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고는 하지만 키도 커야...(당신 스윽 본다. 클 필요는 없겠군.) 음, 건강도 챙겨야 하는 법이외다. 인간의 적정 수면시간은 8시간이야. 혼나지는 않지만 개인 관리는 스스로 해야 하지 않겠소?(시계 힐끔. 그러니까...) ... ... 대략... 7시... (9시간 잔다는 소리다. 분명 더 늦게 일어날 때도 있겠지. 수업에만 안 늦으면 되는 것 아닌가,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아버지가 광고를 찍으시는고? 유명인이시구먼! 혹여라도 제안이 들어오면 알아서 거절을 하는 것으로 하지. 나도 그렇게 얼굴이 팔리는 것은 그닥 내키지 않으니 말일세. 임자 그 말 나중에 철회하는 일 없도록 꼬옥 기억하고 계시게나. 제법 많이 나오던걸? 시계나 키링이나 인형이나 쿠션이나... 뭐 그런 것들 말이야. (고개 꾸닥.) 있긴한데~ 스스로의 것을 살 정도로 자기애가 깊지는 않아서 안 샀어. 타이머 중에 인형 전부 가지고 있는 애 있을걸? 궁금하면 보여달라고 하게나.
그보다 바로 자도 괜찮구 다른 곳 구경해도 괜찮은데... 어쩔래? 내일부터 바로 수업 있긴 할 텐데... 어쨌든 지금은 자유시간이니 말이외다.
카데르:결심이라면, '구원자의 역할을 받고 자리했으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을 말하는 건가. (방금 전 들었던 말을 따라 읊는다.) 그것 참 타이머가 가지기에 적합한 마음가짐이긴 하다마는, 나는 흔들려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기껏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의지하지 않으면 손해잖아. 언제 어떻게 상황이 변할 지 모르는데. DOT 내에 달리 의지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테고. (애늙은이 같은 말 자각도 없이 툭툭 뱉는다. 경험에 의거한 말인지, 일반론에 의거한 말인지 알 수 없다.) 뭐, 비슷해. 완벽한 도련님은⋯ 어떤 일이든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책임을 끝까지 직시하는 사람이지. 감정이 흔들려서도 안 되고 망설여서도 안돼. 어쩌면 세간에서 말하는 완벽한 구원자와 동일한 존재일 수도 있겠군. ⋯방금 전에 그런 말을 한 애가 할 말이냐? 난 나약한 모습은 보이기 싫어. 그런 건 보기 안 좋잖나. (아주 완벽한 '넌 되고 난 안돼'다.)
신체에 맞는 수면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하던데. 나는 6시간 정도만 자면 아주 말똥해져. 오히려 길게 자면 길게 잘수록 컨디션이 이상해지니까 그 부분은 신경 안써도 된다. 네가 일찍 잠드는 편이라면 일단 자제는 하겠다만⋯ 잠귀가 밝은 편인가? 아니라면 나도 같이 일찍 자는 대신 일찍 일어나서 활동하게. (이제는 능력의 훈련도 병행해야 할테니 여러모로 할 일이 많다. 함께 10시에 잠든다면 4시부터 일어나서 훈련장이라도 가면 되는 일이었다.)
음⋯ ⋯⋯그래. 가끔 얼굴 비추신다. 너도 한 번 정도는 본 적 있을 거야. 그래도 나랑 하나도 안 닮아서 알아보진 못할 걸. (병원 관련 홍보를 위해서 이따금 출연하곤 하니까. 다만 굳이 정정하진 않았다. 가정사를 알리는 건 아직 이르다 판단한 탓이다.) 이 도련님이 철회할 일이 뭐가 있겠어? 키링이나 쿠션 같은 건 예상했어도 시계까지 나오는 걸 보면 확실히 범위가 넘네. 나중엔 도련님 어록- 같은 것도 나오는 거 아니냐. (약간 기대감 담긴 목소리.) 그런 건 남의 걸 보는 게 아니라 직접 수집하는 거다. 좋아⋯ 다음에 기회가 되면 네 굿즈랑 굿즈는 싹 사서 장식해버려야지. (하며, 적당한 펜 주워 들어서는 비품 신청서에 하나 더 적는다. 장식장. 아주 정갈한 글씨로.)
나야 앞으로 3시간은 더 쌩쌩한데, 너야말로 괜찮겠나? 원래 지금 즈음에 잠든다면서. 너만 괜찮다면 훈련장도 좀 둘러보고 싶긴 하다. 도서관이야⋯ 내일 오후에 혼자 가도 되니까.
리은:비슷하긴 하지? 애초에 우리가 어린애라고 해도 군인으로 커야 하는데 언제까지 어리광 부릴 수는 없소. 어깨가 아~주 무겁구료. (어깨나 으쓱였다가 이내 당신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의지할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는 소리외다. 물론 그분들은 내가 기대면 언제나 받아주시긴 하시겠지만 내 마음대로 만날 수 있지 않잖아. 당장 보고 싶은데 보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야? 그러니까 상대를 조~금 바꾸어 보자는 거요. 예를 들자면~ 다른 타이머라던가~ 임자라던가~ 뭐 그런 거지.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는 혼자 해결하는 것을 편해하는 편이라 무언가에 기대거나 그러는 일은 없겠네. 나중에 힘들면 생각 좀 해보고. (눈 약간 가늘어졌다.) 그러니까... 완벽한 애늙은이 도련님이 되겠다는 소리잖는가! 재미없는 인간군상이구먼. 마음의 거리가 더 멀어졌네. 그건 인간미도 없고 로봇이나 다를게 뭐야? 완벽한 도련님보다는 그냥 도련님이 좋겠는데. (하루빨리 그만두길 기원하겠다며 투덜투덜 거리기나 했다. 아랫입술 쭉 내밀어서 오리입이나 했다.)
한번 잠들면 시체처럼 자니까 뭘 하던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소. 단! 커튼은 걷지 말 것! (기억해! 커튼은 걷어선 안된다! 강조해서 덧붙인다.) 빛 들어오는 순간 깨서 그 날 하루는 아주 좀비처럼 기어다닐 수가 있단 말이외다. 잠 못 자는 순간 낮잠이라도 자야 하는데... 수업 중에 졸 수는 없으니까.
나중에 TV를 틀었을 때 나오면 귓뜸 해주어. 미디어와는 완전히 단절된 삶이나 살아와서 내 무어가 무언지 잘 모르오. 그러고 보니여기 애들끼리만 쓰는 단말기를 임자도 받아야 하는데... 내일 즈음 주겠지. 쓸데없는 것들로 문자가 쏟아져서 잘 안 보는 편이라 존재를 잊고 있었어. (입꼬리 씰룩인다. 어록이라... 어록...) 비공식이라고 하면 나오지 않을까? 나중에 선물이라도 해줌세. 그럼 임자는 내 것을 모으는 거요? 난 임자 굿즈 모으면 되겠구료. 딱이야. (장식장, 이라고 적혀있는 옆에 2개 기입한다.)
오늘은 낮잠을 조금 자서... 훈련장 다녀와서 자지 뭐어. 자아 가자가자. 어차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훈련장은 텅 빈 공간이라 볼 것도 없겠다만~ 능력은 되도록이면 훈련장에서만 사용하는 것이 규칙이오.
복도로 나가니 다른 카운터와 타이머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습니다.
리은과 카데르를 보고 작게 손을 흔들어주기도 하는군요.
훈련실은 방의 형태로 숫자가 클수록 더 큰 규모이며, 총 14개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능력 운용, 실험을 위해 쓸 수 있는 곳으로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준비되어 있습니다.
CCTV가 작동 중입니다. (부수지 마세요!)
리은이 홍채를 인식하여 1번 훈련장의 문을 엽니다.
자유롭게 사용 가능한 훈련장은 안이 텅 빈 강당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카데르:정말 텅~ 비었군. (툭툭 바닥이나 차본다.)
리은:아무래두? 저기 큰 쪽으로 가면 지형에 맞춘 것들도 있고 그렇소. 여기는 보통 기본적인 능력 사용이나 체술을 하는 편이외다.
(쭈먹 쥐고 슉슉!)
카데르:(오. 애라도 군인이라고 제법 각 잡힌 움직임 보고서 작게 감탄한다.) 리은은 능력 사용도 능숙하겠지/
리은:2년 즈음 다루었으니까 기본은 잡혔소. ... 다른 이에게 능력 사용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실전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다마는... 대충, 쓰는 방법은 이렇게... (제 그림자에서 긴 어둠 뽑아내어 허공 후려쳤다.) 나름 편리하긴 하오. 높은 곳 물건 꺼낼 때라던가? 임자는 능력 사용을 어떤 방향으로 하고 싶은고?
카데르:초능력이라는건⋯ 인간한테 쓰기에 썩 꺼림칙한 능력이기는 하지. (개인적인
구원자에 대한 평가는 속으로 넣어둔다. 아직 말할 때는 아니지. 어쩌면 영영 그럴 수도.) 꼭 채찍같은 걸. 좋은 활용법이야. 첫 발현 때부터 그런 식으로 나왔었나? ⋯ ⋯내 건⋯ 네 것처럼 영 써먹기 좋진 않은데. 궁금해?
리은:성인이 되면 이런저런 방향으로 쓰긴 해야겠지만... 조절 안 하면 대참사니까. 그리고 타이머가 되면 신체도 일반인과 달라진다고 하던걸? 카운터도 그럴지 모르겠지만... 똑같지 않겠는가. 나중에 진단 결과가 나와야 알겠다만서두. (눈썹이나 올렸다가 내린다.) 첫 발현 때에는... 엄... 아니. 노력해서 형태 바꾼걸세. 임자도 마음에 안 들면 바꿀 수 있을 거야. (고개 꾸닥인다. 알려줘.)
카데르:그건 처음 듣는 소리군. 능력이 생긴 뒤로 유의미한 신체 변화는 느껴지지 않았다만, 능력에 동화될수록 신체가 변하는 건가⋯. 만약 근력이 향상되는 거라면, 네가 지금 날 치면 난 병동으로 실려가게 되나. (약간 호기심 일었다.) 그래? ⋯아니, 됐다. 공격하기 쉬운 형태로 변경하는 건 도련님에게 어울리지 않지. (검지로 허공 가리킨다. 손가락 끝과 평행한 곳에서부터 검은 점 생기더니 꾸물거리며 몸을 부풀린다. 딱 당신 머리가 들어갈만큼의 크기.) 궁금하면 저기로 머리 넣어 봐. 내 건 딱 어둠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형태거든.
리은:그렇게 접근을 하는 것은 또 새로운 시각이구먼. 비슷하지 않을까? 체력도 일반인보다 늘고 근력도 그렇고... 크게 달라진 점은 모르겠다만 이전에 다른 애가 힘조절 잘못해서 교실의 문손잡이를 제대로 부숴먹은 후로는 다들 조심하고 있긴 했네. 갑자기 바뀌었다면 다들 적응 못했을 터인데... 점차 되지 않겠는가. (한참 뜸) ... 워, 원하는 것은 아닐거라 믿소! 폭력 결사 반대야! 첫날부터 파트너를 병동에 보냈다는 무뢰배는 극구 사양이외다! (쭈먹 꼭 쥐고 등 뒤로 숨긴다. 곧바로 쫑쫑 가서는 얌전히 제 머리 집어 넣었다.) 오, 깜깜해! 이거 있으면 암막커튼 없어도 되는 것 아니외까? 신박하구먼. (이런 소리나.)
카데르:교실 문고리가 힘조절 잘못한다고 부숴질 수 있는 거였군? 나도 서서히 그렇게 되는 건가. 꼭 인간에서 멀어지는 것 같아 묘한데. ⋯군인으로서는 좋은 일이겠다만. ⋯ ⋯ 그럴 리가 있나. 나한테 맞는 취미가 있으리라 생각한 건 아니지? 나도 파트너한테 한 방에 나가떨어진 도련님- 같은 타이틀은 사양이라고. 그냥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을 뿐이야. 적당한 인형 같은게 있었으면 시험해 봤을 텐데, 아쉽게 됐어. (시치미 뚝 뗀다. 연기가 아-주 자연스럽다. 그래도 눈치 빠른 당신이람 알아챌 수 있을지 모르지. 머리 집어넣는 양 가만 바라보다가, 어둠 속에 들어가 있지 않은 등 톡톡 두드린다. 나오라는 뜻이다.)
리은:사람들이 그러잖소. 타이머는 시간 그 자체라고. 능력을 깨우치면서 인간임을 박탈 당하고 구원자라는 종족으로 바뀌는 것이라고들 하더구료. 신체가 바뀌는 것도 이 탓이라면서. 뭐, 이것도 다 말 뿐인거고 스스로가 인간됨이 확실하면 인간인 것이지 무어겠나? ... 임자랑 거리를 조금 벌리겠네. 인형이 불쌍하잖는가! (라고는 했지만 눈치는 챘으니 농담으로 끝낸다.) 나중에 다른 애들 훈련하는 거 보면 제법 살벌하오. 물론 난 체술은 드럽게 몸에 안 맞아서 구경이나 하고 있겠소마는. (어둠 속에 머리 콕 박은 채로 아- 아-!! 소리나 질러본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기에 꿈빡. 오래 있으면 사람 미치긴 하겠군. 어떤 방식으로 사용해야 할까 리스트를 쭈욱 뽑아내다가... 등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뽁- 머리 뽑아낸다.) 아-!! (큰 소리 내보고) 제법 괜찮은데? 이런 방식의 능력은 색다르구료. 나는 제법 마음에 들어.
카데르:그런 말을 지껄이는 치들도 있나? 아무리 대물림 된다지만 처음 타이머로 임명받을 때는 모두 12살 꼬맹이들인데 못하는 말이 없군. 하기야 매체로 비추어지는 이들을 사람으로 못 보는 자들은 널리고 널렸나. (작게 혀 찬다.) 내가 실언했다. 그런 생각은 그냥 버려. 처음부터 하지 마라. 정신 나빠진다. (눈 가늘게 뜨고⋯) 인형이 그냥 인형이지 뭐가 불쌍⋯ ⋯잠시만, 너⋯ 혹시 인형 수집이 취미고 그래? 옷도 입혀주나? (군이라 한들 여자애는 여자애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물론 헛생각이다. 구체에서 벗어난 뒤 뱉어지는 감상에는 표정 미묘해졌다가 금세 본래대로 돌아온다.) 그래? 이 도련님의 발상에 놀랐나 보군? (숨쉬는 나온 자뻑,) 어디가 왜 마음에 드는지 설명좀 해봐. 참고할 부분 있으면 참고하게.
리은:연구원들도 그런 소리를 하고 박사라는 자들도 자주 이런 소리를 하오. 문제가 될 것이 있는고? 12살이라고 하여도 제어되지 않은 힘을 가진 이들을 제어하려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가져가 붙여야 하는 법이외다. 내 알아서 잘 걸러 듣고 있으니 신경 안 써도 되오.
... 앙? 뭔 소리를 하는 거요, 임자...? 그럴 리가 없잖나... (표정이 미묘하게 이상해졌다. 너 뭐 그런 거 해? 같은.)
됐고... 임자 능력 이야기...로 돌아가서... 저 안에서는 느껴지는 것이 하낫도 없더구료. 이것은 실험을 해보아야 알겠지만 아공간 느낌으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이 들어가면 제정신 유지가 힘들 수도 있겠지만 범죄자 제압은 이보다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이 크게 없다고 보오마는.
카데르:⋯세간이 아니라 연구원이나 박사들이 그런 말을 한다고. 그것 참⋯⋯ 뭐, 네가 알아서 걸러 듣고 있다면야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 그래도 혼자 듣기 버거울 때는 말해라. 이제는 파트너니 그만한 역할은 할 수 있을 거다. (약간 풀어서 말하자면, 그 합리적인 망언을 듣다 못해 상대의 멱살을 잡고 싶어졌을 때 대신 짖어주겠다는 뜻이다. 그게 언어적 형태이든 혹은 물리적이든 간에⋯)
뭘 그런 표정을 다 하고 그래? 그 나이대 같고 좋기만 하군. 그야말로 아―은―이 아닌가. (본인이 수집욕 있다고 죄 그럴 거라고 여기는 멍청이가 실존한다.)
카데르:⋯역시 그렇지? 나름대로 살상력을 배제한 활용법을 생각했는데 말이다. 의도대로 보였으면 다행이군. 공간만 성인 남성 여럿 들어갈 수 있는 크기로 전개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일만 남았군. (웃음 그려낸다.) DOT 쪽에서 조금 더 공격적으로 사용하라 으름장 놓는 일은 없겠지?
리은:세간에서는 타이머 찬양하길 바쁘지 무어. 그 외로 신경 쓸 것은 크게 없소. 어차피 직접 만날 일도 거의 없고 여기는 인터넷도 사용 금지되어 있으니까. 좋네. 혹여라도 혼자 듣기 버거운 소리 하는 이가 있으면 임자를 찾으면 되겠구료. (이미 몇 명 생각나는 듯 손가락으로 꼽아본다. 하나 둘 셋 넷... 아 그리고 그놈도 있지. 다섯... 여섯... 점점 늘어난다.)
...............? 어... 그래... 임자가 먼저 도와준다고 했소. 책임을 지시게나. 아-은-이-가 부탁한 거니까 꼬오오오오옥 들어주어야 해~. (안 그래도 동그란 눈 더 둥글게 뜨고 당신 올려다 본다. 빠르게 깜빡이다가 당신 멱살 잡아채어 끌어내리더니 뺨에 가볍게 입 맞춘다. 그리고 입을 벅벅 문지르며 떨어진다. 당신의 멱살 잡은 것을 거의 던지듯 뿌리치고는 허어...) 다음에는 못 써먹겠군... 어떻게 하는 건지 나 원 참...
내가 공격적으로 나가면 그만이니 되었네. 임자는 그렇게 계속 해도 되어. 공수는 파트너끼리 맞춰서 하면 되는 것이잖나.
카데르:(천천히 접혀가는 손가락 보더니 고개 모로 기울인다. 잠깐의 침묵⋯) 그건 참기 어려웠던 상황을 떠올리고 있는 건가, 아님 싫어하는 사람의 수를 셈하고 있는 건가? 어느 쪽이든 썩 달갑지는 않은데. 신경 닳게 하는 사람들이 그리도 많아?
그래 그래, 아무렴 아은⋯ 의⋯ ⋯ ⋯⋯⋯ ⋯⋯⋯⋯⋯ ⋯ (토끼같은 눈망울 내려다 보며 짓궂게 말하다, 갑작스럽게 끌어당기는 손길에 반사적으로 상체 숙였다가 그대로 굳는다. 카테르 아이셀 살아온 햇수 고작 13년, 그동안 어머니 외 다른 인물에게 뽀뽀받은 횟수는 자그마치 0회⋯⋯ 그러니까⋯⋯⋯⋯ 빼앗겼다. 무엇을? 되먹지도 않은 순결을⋯⋯) 너⋯⋯ (입 꾹 다물었다가.) ⋯ ⋯⋯⋯ ⋯⋯ ⋯이런 건 어디서 배웠냐? (겨우 하는 말이 그거다.)
⋯⋯그러고 보니 네가 능력 쓰는 건 본 적이 없군. (한손으로 얼굴 쓸어내리고 한숨 푸욱⋯⋯⋯ 쉬었다가.) 네 사용법은 어떻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겠다.
리은:(아홉의 수에서 멈췄다. 응? 고개 들더니) 둘 다 해당되오. 신경 닳게 하는 이가 많은 것은 아니오만 이래저래 만나는 일이 많다보니 어쩔 수 없구료. 뭐, 그 중에는 좋은 사람도 있긴 한데 안 맞는 부분이 있는 것은 모든 인간 공통분모 아니겠는고. 그러니 내 편이나 좀 되어라~ 같은 거지. (어깨나 으쓱이고 손 펴버린다.)
(입 문지르고 있다가 연지가 다 번졌는지 짜증스러운 소리나 냈다. 손으로 마저 닦아서 완전히 없애더니) ... ... 임자 뭔 소리를 하는건지 모르겠는데... 아니 왜 그런 표정이지? 내, 내가 못할 것을 한 것도 아니잖아! 메, 멜(-8시 타이머-)가 그랬단 말이외다! 이렇게 하면 부탁 대부분 다 들어준다고! 역시 쓰는 것이 아니었어. (투덜투덜...)
... 따로 보여주지는 않는데... (아랫입술이나 대빨 내밀어 오리입 되더니 팔짱낀다. 그림자가 꿀렁이더니 촉수 같이 자라나 허공을 후려친다.) 채찍 같은 형태로 사용하네. 그 외로는 따로 생각 안 해봐서 말이야.
카데르:인간관계에 어느정도 피곤함이 따라오는 건 어쩔 수 없긴 하지. 그런 거라면 다행이다.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한바탕 뒤엎을 뻔했군. (느리게 눈 끔벅이고.) 나랑 지내면서도 그럴 때가 있으면 확실하게 말해. 방도 같이 쓰고, 거진 내내 붙어있을 텐데⋯ 불편한 일이 생기면 바로바로 풀어야 서로 안 힘들지. 네가 그러진 않을 것 같다만⋯ 혹시라도 부담 가지지는 말고. 너랑 일이 있을 때도 나는 네 편일테니까 말이다.
(약간의 이물감 남은 뺨 살짝 문질러본다. 옅은 분홍빛 묻어나오는 것 보고 얼굴 하얗게 질렸다. 정말 뺏겼다⋯⋯⋯ 자기보다 30cm는 작은 여자애한테 힘으로 져서⋯⋯⋯⋯⋯⋯⋯) ⋯⋯그 멜⋯이라는 애가 누군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한테는 하지 마라. 못할 짓이다. 못할 짓이야, 이건! 소설에서 이런 장면에 등장하면 독자들 열에 열은 아 이녀석들 러브라인이군! 하! 내 이럴 줄 알았지! 이 소설도 판타지인 줄 알았더만 연애 요소가 등장하는 거였어! 할 거란 말이다. (묘하게 구체적인 게 경험담인가 싶다.)
⋯채찍이라. (한손으로 제 턱 짚고 잠시 고민한다.) 내가 공간을 크게 만들 수만 있다면, 네가 잡아채고 그곳으로 던지는 식으로 연계할 수도 있겠군. 연구해볼 가치가 있어. 보여줘서 고맙다. (눈가 휘어 미소 짓는다.)
서로 능력도 확인했으니 슬슬 다음으로 이동할까⋯ 이제 대망의 도서관이군. 그렇지?
꽤 많은 장서를 보유하고 있으므로 원하는 자료는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소설, 동화, 만화, 논문, 신문, 수필, 사전, 에세이······ 종류를 가리지 않습니다.
타이머 이야기도 있겠지만 대외적으로 공개된 것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성 싶습니다.